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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한석봉조 2010. 7. 1. 17:13

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1.눈물(2010.6.14)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딸에게

시집을 빨리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좋은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웃으며 준비 잘하라고 했습니다.

사위 감이 인사를 왔을 때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며,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양가집 상견례를 나누고,

주례 신부님과 양가 부모님 동석하에 식사를 하고,

살 집을 찾아가 살림살이를 들여 놓고,

이리 저리 다니고,

이일 저 일을 하고,

함이 들어 올 때도 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 일주일이 되던 날 눈물이 났습니다.

성당에서 딸과 함께 주일 미사를 보며

눈을 지긋이 감고,

‘딸이 시집을 갑니다.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세요.....’ 라며 기도하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고하고 나서,

‘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울컥하더니 눈물이 봇물 터진 듯 흘러 내렸습니다.

미사시간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닥아도 닥아도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

어디에 눈물이 그리 많이 고여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딸이 이상했는지 흘깃 쳐다보고는

같이 눈물을 짭니다.

우리는 왜라고 말할 것도 없이 그냥 같이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눈물은 계속 쏟아졌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닥아 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흘렸습니다.

감정을 어찌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마중하는 마누라에게

피곤하다며 누워서도 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닥아 내며 잤는데 그러고도 깨어보니

눈언저리에 홍건이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운 게 아닙니다. 눈물이 난 것입니다.

잘 자랐고, 잘 컸고, 잘 가는 것인 데

무슨 감정인지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기쁨인지, 대견함인지, 서운함인지, 아쉬움인지. 슬픔인지...

참으로 자식은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습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날 줄은

저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눈물이 한번도 안 나와

내가 딸에게 너무 무심했었던 때문인가 하고

자책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한번도, 잠시도 아닌 이렇게 하루 종일

장마 비 내리듯 그침 없이 눈물이 내리다니요...

이 눈물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와는 또 다른 듯 합니다.

그 때가 아들의 슬픈 눈물이었다면,

지금은 아비의 가슴 찡한 눈물이라 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흐르는 눈물이 그칠 줄을 모릅니다.

통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마누라도 아마,

몇 번은 울었을 것이고,

지금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것저것 보고 만지고 챙기며 눈물짓고 있을 겁니다.

아,

이제 딸이 1주일 후면 시집을 갑니다.

호적을 파 간답니다.


2.운명(2010.6.17)

그렇게 또 날이 갔습니다.

준비도 어느 정도 마친 듯 합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웨딩드레스를 몸에 맞춘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보니

차려입은 옷이 참 예뻤습니다.

그렇게 이쁜 옷을 입고 가야 한답니다.

부모에게는

피투성이 맨 몸으로 왔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 가야하는 게

여자의 운명인가 봅니다.

저녁을 먹으며 마누라에게 물었습니다.

딸에게 나는 어떤 아빠였느냐고...

마누라는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밥을 건성으로 입에 넣으며,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딸이 생각하고 있겠죠. 먼 훗날 말할 겁니다”

궁금했지만 거기서 멈췄습니다.

이제 매일 아침 회사에 나가면서

“아빠, 다녀올게요”라고 하는 말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마누라는 왼 종일 딸의 텅 빈 방에서 무엇을 할지...

맘도 여리고 힘도 없는 사람이

혼자 눈물은 얼마나 흘리고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

그날이 되면

간다거나 온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가야하고 그냥 가야 합니다.

멈추게 할 수도 없는

그날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3.이별(2010.6.19)

2010년 6월 19일.

아, 딸이 갔습니다. 웃으며 갔습니다.

전 날 밤 잠자리에 들기전에는,

가족이 모여 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내일이면 딸, 동생이 시집을 간다고...

행복하게 잘 살게 해달라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중에도 눈물은 계속 흘러 내렸습니다.

한마디씩 마음에 있는 말을 하며,

저도,마누라도,딸도,아들도...

모두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그리고 딸은,

안방으로 들어가 내 자리에서 엄마와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그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둘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을 겁니다.

아침에는 바빴습니다.

일찍암치 딸을 웨딩드레스 입는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마누라도 미용실로 데려다 주고,

아들은 이용실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식장에 일찍가서 점검도 하고요.

장마가 시작된다고 예보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 구름만 많이 끼고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덥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는 데,

중간에 지나가는 소나기가 쬐금 내려 소동이 났지만,

더위를 식히게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마치 빗속이 아닌 빗 사이 사이에서 결혼식을 잘 치른 것 같아,

스릴이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날씨가 나쁜데도

많은 사람들이 만사를 제치고 찾아 주어 고마움은 더욱 컸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입장할 시간이라며 오라는 신호가 와

마누라가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가 맨 앞 줄에 앉아 있는데,

수녀님이 급히 쫒아와서는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와야지 왜 여기 앉아있느냐며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아차,

혼쭐이 한번 나고서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데,

어이가 없어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원...

하객들은 제가 연신 웃는 모습을 보고

딸을 시집보내는게 기분이 아주 좋은가 보다고 생각들을 했더랍니다.

사실은 실수한 것을 생각하고 어이가 없어 그랬던 것인 데 말이죠.

그런 저런 일들을 뒤로하고,

저는 딸의 두손을 잡고 들어가

사위에게 두손을 인계했고,사위는 인수받았습니다.

애비는, 딸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마음을 모아 빌며,

슬픈 눈물을 웃음으로 감추고 보내 주었습니다.

29년 만의 이별입니다.

 

4.흔적(2010.7.2)

출가한 딸이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하루 밤을 자고 시댁으로 간답니다.

아침에 출근하며

‘그래 잘 가고,

가서 안부 말씀 전해 드리라‘ 라고 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저녁 모임 자리에 가기 위해 나온 마누라가 손에 뭘 들고 있었습니다.

‘그게 뭔데?’

웃으며 말을 안 하던 마누라는 내가 자꾸 묻자,

‘아 글쎄, 모임 오려고 나오다 문득 편지함을 보니 이게 들어 있잖아!

보니 딸이 가며 아빠, 엄마, 오빠에게 한 장씩 편지를 써 놓고 갔더라구...‘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울컥하더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보나 마나 집을 떠나며 소회를 적은 글을 써 놨을 텐데...

감정을 추스린 다음

‘뭐라고 써 있는 데?’

하고 묻자 아직 안 읽었답니다.

우리는 편지를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리고 둘 다 말없이 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갔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도착 하자마자,

우리는 내내 궁금 했던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편지 저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웃기도 울기도 했지요.

개략적인 내용은,

그동안 잘 키워줘 고맙다는 감사의 글과,

신혼 여행 후 새 살림 집으로 들어가는 데,

그동안 들락거렸던 집이 아니어서

어색하였고 상당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었다는 것,

여행을 하고 돌아와보니 

친정 식구들이 신혼 집을

이것저것 잘 준비해주고 꾸며줘 놀랐고

그래서 고마웠다는 글,

앞으로 잘 살겠다는 다짐 등

평범한 글을 적어 놓았는 데

그래도 그 글을 읽는 우리들의 마음은

웬지 짠하고 가슴이 아파 옴을 느꼈답니다.

그러면서 마누라는

딸이

차를 타고 시댁으로 가며,

‘엄마, 나 자주 와도 돼?“ 라며 눈물을 흘리는 데

마누라는 그 말에

‘아, 딸이 진짜 가는 모양이구나’ 라는 생각에

집에 올라와

딸이 쓰던 방,

짐을 챙겨 가지고 나가고 난

딸의 흔적들을 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직도 눈물은 끝나지 않은 듯 합니다.

딸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

나에게 딸의 흔적은 눈물이 되었습니다.

이즈음,

나의 눈물은 딸의 흔적입니다.

딸은 눈물입니다.